일제강점기 옥매광산 수몰 광부 118인, 28일 해남서 합동추모제

유족회 주관으로 28일 삼호리서 추모식 및 설치미술전 개최, 널빤지에 매달려 숨진 원혼 위로

나주인 취재팀||
일제강점기 옥매광산 수몰 광부 118인, 28일 해남서 합동추모제 - 문화 | 나주인
일제강점기 옥매광산 수몰 광부 118인, 28일 해남서 합동추모제 관련 이미지 © 나주인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됐다가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집단 수몰된 옥매광산 광부 118인을 기리는 합동추모제가 28일 해남 황산면 삼호리 선착장에서 열린다.

행사는 황산옥매광산 광부희생자 유족회가 주최한다. 200여명의 군민이 참가한다.

추모식과 헌화가 있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추모공연도 열린다.

추모제에는 '예술로 돌아온 118인'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 전시가 함께 개최된다.

선착장 인근 광물 창고 등에서 '바깥미술회' 소속 회원 10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작품 재료는 바닷가에 버려진 어구와 유리조각, 옥매광산에서 주운 돌들이다.

전시는 28일 개막해 2개월간 이어진다.

이번 전시회는 2030년 서남해안 섬 벨트 트리엔날레를 앞두고 해남우리신문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마련됐다.

'해남, 섬과 육지 예술로 잇다'라는 주제로 황산면 옥매광산 '예술로 돌아온 118인'과 문내면 임하도 '섬으로 간 미술관' 등 두 차례 전시회가 진행된다.

황산 옥매광산 광부수몰사건은 일제강점기 제주도로 강제로 끌려간 광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바다에 집단 수몰된 사건이다.

황산면과 문내면 등의 광부들은 1945년 3월 하순경 일본 경찰과 헌병에 의해 강제로 배에 태워져 제주도로 끌려갔다.

이들은 제주도 서귀포 등지에서 군사시설인 굴을 파는 일에 투입됐다가 같은 해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배를 구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배에는 일본인 5명을 포함해 225명이 타고 있었다.

배가 추자도 앞에 이르렀을 때 큰 불이 났고, 승선한 광부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내려 널빤지와 깃대 등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렸다.

표류 8시간 만에 일본 경비정이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일본 경비정은 구조된 137명 가운데 일본인 5명이 포함된 것이 확인되자 나머지 118명의 광부를 그대로 버려둔 채 현장을 떠났다.

이 사건 이후 황산면과 문내면은 초상집이 됐다.

광부들이 떠난 항구에서는 원혼을 달래는 큰 굿이 2~3개월간 치러졌고, 한 마을에 30호 이상이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일이 매년 반복됐다.

생존자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유족들도 고향을 떠나면서, 남아있던 유족 몇몇이 돈을 모아 광부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945년 8월 23일(음력 7월 16일)에 합동 제사를 지내왔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해남지역 연극단체인 극단 미암의 도움으로 합동추모제가 성사됐다. 2016년부터는 황산면과 문내면 사회단체들이 추모제를 지원하고, 추모조형물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추모비 조성을 이끌어냈다.

해남군민 1인이 1만원씩을 내는 성금모금행사가 진행돼 1200여명의 군민과 각 기관단체에서 1400여만원의 건립 기금이 모였다.

광부들이 배를 타고 떠났던 삼호 옥선창 앞에는 5.5m 높이의 추모조형물이 세워졌다.

배 모양 조각물 위에 희생된 118명의 광부를 상징하는 118개의 원모양을 조성했다.

옥매광산은 일본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가 1924년부터 명반석, 납석, 고령토 등 광물자원을 채굴했던 곳이다.

현재 바닷가의 광물창고와 산속의 다이너마이트 저장창고 등이 남아있다.

최근 산 정상의 광물창고도 확인됐다.

옥매광산 희생자 유족회 박철희 회장은 “군민들의 도움으로 뜻 깊은 추모제를 진행하게 된 만큼 의미를 잊지 않고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며 “앞으로 옥매광산에 대한 근대문화유산 지정 등 과거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일에도 앞장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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