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8월부터 1980년 2월까지 보건소 가족계획선임지도원으로 일하던 당시, 첫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산아제한을 홍보해야 했던 경험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 되새겨지고 있다.
당시는 온 나라가 산아제한의 열기 속에 있었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거리마다 붙어 있었다.
이 표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국가적 사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출산 제한을 홍보하던 본인이 첫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만삭의 산모가 보건소에 서서 "아이를 적게 낳아야 합니다"라고 홍보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는 임신 중이면서 남한테는 애를 낳지 말라니, 참 아이러니하네." 뒤에서 수군거림이 들려왔고, 대놓고 핀잔을 주는 이들도 있었다.
억울한 마음이 밀려올 때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엣말을 건넸다.
"저… 이건 제 첫아이랍니다." 첫아이를 품은 기쁨을 드러내지 못한 채 국가 정책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눈총을 견뎌야 했던 시절이었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180도 뒤집혔다.
거리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고, 인구절벽과 저출생이 매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지자체마다 출산수당을 얹어주며 아이를 더 낳아달라고 부탁하는 세상이 됐다.
다자녀 가구의 기준을 낮추고 아이를 많이 낳은 부모에게 환대와 찬사를 보낸다.
출산 제한을 외치던 눈총의 자리에 이제는 환대와 격려가 들어앉았다.
인구가 너무 많아 나라가 기울어진다며 아이 낳는 것을 죄시하던 그 시절에, 아이가 없어 나라가 사라질까 걱정할 날이 올 줄 상상한 이는 없었다.
만삭의 배를 문지르며 미안함과 억울함 사이를 오가던 그 시절 보건소의 어린 지도원은 이제 할머니가 되어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 시절 배 속의 내 아이가 소중했듯 지금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 역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축복이라는 사실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