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고다산성서 '왕'명 청동인장·금동허리띠 등 유물 대거 출토

통일신라 지방행정 거점 치소성 입증…17일 현장설명회 공개

나주인 취재팀||
해남 고다산성서 '왕'명 청동인장·금동허리띠 등 유물 대거 출토 - 문화 | 나주인
해남 고다산성서 '왕'명 청동인장·금동허리띠 등 유물 대거 출토 관련 이미지 © 나주인

해남군 현산면 고다산성 발굴조사에서 '새금관(塞琴官)'명 기와, '왕(王)'명 청동인장, 중국 당나라 형식의 금동허리띠 등 유물 100여 점이 출토됐다.

해남군은 6월부터 3개월간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의 핵심 유적인 고다산성에 대한 첫 발굴조사를 실시해 성벽과 문지 등 유구를 비롯해 이들 유물을 확인했다.

출토 유물은 지방 관아 수준을 뛰어넘는 최고위층의 위세품이다.

이는 고다산성이 방어시설을 넘어 통일신라시대 지방의 정치·행정 기능을 수행한 거점 치소성(治所城)이었음을 보여준다.

'새금관(塞琴官)'명 기와는 문헌에 기록된 백제 행정지명과 관련된 자료로, 고다산성의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왕(王)'명 청동인장은 행정문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나라 형식의 금동허리띠는 통일신라시대 신분제와 지방 지배체계를 이해하는 자료다.

막새를 비롯한 기와류, 무기류, 농경구, 의례용기 등도 출토됐다.

고다산성은 서·남해안 해상 교통로와 육상 접근로를 조망할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축산성이다.

산성이 위치한 현산면은 백제시대 새금현, 통일신라시대 침명현, 고려시대 해남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비정된다.

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석축성으로 확인됐다.

북쪽 성벽은 외부를 들여쌓기 방식으로 축조하고 내부는 판축(板築)으로 기초를 다진 뒤 수직쌓기했다.

이런 축조 방식은 통일신라시대 성곽의 특징이다.

동쪽 문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설치됐으며 고려~조선시대에 계단식으로 보수된 것으로 조사됐다. 3개의 문화층도 확인됐다.

성벽 하층에서는 마한시대 유구와 유물이 나왔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석축산성이 축조되며 치소성으로 운영됐다.

폐성 뒤에는 담장을 갖춘 조선시대 건축물이 들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 결과는 고다산성이 마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교통·방어의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해상과 육상 교통로를 조망·통제하고 지방 행정을 수행하는 거점으로 기능했다.

발굴 성과는 오는 17일 오후 2시 현산면 고다산성 발굴 현장에서 열리는 현장설명회를 통해 공개된다.

해남군은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역사문화권 정비사업 방향을 수립하고 국가유산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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